포항과 포스코

독후감

작가 : 채헌
나온날 : 2022년 11월 10일
읽은날 : 2024년 3월 29일

살면서 수도권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성인이 되어 포스텍에 입학하여 포항에 오게 되었다. 포항에 살기 시작하면서 살고 있는 장소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데, 그 부분을 해소시켜 준 책이다.

나는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인 포스텍과 그 관계에 집중하여 책을 읽었는데, 포항과 포스텍에 대한 저자와 나의 입장은 크게 다른 것 같다.

그 점에 집중하여 독서록을 작성하고자 한다.

포항과 포스코

대치에서 학원을 다닐 적, 높게 세워져 있는 포스코 센터를 지나다니며 봤다. 그때는 포스코가 그렇게 큰 회사인 줄은 몰랐다. 나에게 있어 포스코는 그냥 '철 같은거 만드는 회사' 였고, 포스코 센터는 많고 많은 서울 빌딩 중 하나였다. 포스텍에 진학하고 나서야 철강에서 포스코의 위상을 알게 되었다. B2B 위주로 하는 기업이 대부분 이럴 거라 생각하지만.

이 책은 포항의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포항하면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인 포스코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포항은 포스코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기업도시'다. 포항을 돌아다니다보면, 포스코와 관련된 건물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나도 삼성 전자가 위치한 수원시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기업과 지역의 유착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포항은 그 정도가 수원보다도 더 한 것 같다.

그러나 현재 철강 산업은 약세이다. 대한민국의 산업구조가 중공업 위주에서 점점 서비스 위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고도 개발 단계가 끝나서 더 이상 대규모의 철강 수요가 없는 것, 중국의 철강이 경쟁력을 갖추고 치고 올라오고 있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포스코는 이제 이전과 같이 성장하고 있지 않다. 수원에 살 때에는, 삼성이 망해버릴까 걱정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포항에서는 포스코가 언젠가 망해버리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조금 하게 된다.

책에서는 포항이 현재 처한 위기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를 타계할 여러가지 방법에 대해서도 다룬다. 철강 넘어, 포항의 신 산업들을 육성하여 이 위기를 벗어나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산학협력을 강조한다. 그리고 산학협력의 '학'에는 내가 다니는 학교인 포스텍이 있다.

포스텍과 포항

포스텍은 수험생 입장에서 봤을 때 참 특이한 학교다. 전국 5개 과학기술특성화대학 (KAIST, UNIST, GIST, DGIST, POSTECH) 의 하나면서 유일하게 사립 대학교인 포스텍은 지방 대학들이 하나 둘 쓰러져가는 와중 여전히 '설카포'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포스텍의 학생들은 경북 지역보다 수도권에서 온 학생들이 훨씬 많다. 졸업생 대부분이 과학기술특성화대학으로 진학하는 28개 과고·영재고 뿐만 아니라 명문 자사고, 서울 강남 지역 일반고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포항으로 온다.

그러나 과거 카이스트 이상의 위상을 보였던 포스텍은 점점 그 위상이 낮아지는 것 같다. 국내 최고의 이공계 대학을 꼽으라면 여전히 '설카포'지만, 포스텍은 이제 인서울 명문 종합대인 연세대·고려대와 비교되고 있다. 물론 그 전부터 서울 내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이유로 카이스트·포스텍을 버리고 연고대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다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포스텍은 연고대보다 확실하게 '좋은' 학교였다. 이제 그런 확실함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포스텍의 위상과 입결이 떨어지고 있는 이유로는 학생들의 수도권 선호 현상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 되었듯이, 이는 점점 심해지고 있다. 당연히 포스텍 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과연 올해 포스텍에 입학한 320명의 24학번 새내기들 중 졸업하고서까지 포항에 남아서 일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장담은 못하겠지만, 재학생으로서 말하건대 30명을 넘기도 힘들거라고 본다. 포항은 연구하고 공부하기는 좋은 도시일지 몰라도 수도권과 비교해서 "살고 싶은" 도시는 아니다. 포스텍에 온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포항은 너무 멀고, 하물며 성장하고 있지도 않다. 좋은 인프라와 양질의 일자리를 갖추고 있는 수도권에 비교하면, 학생들이 포항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저자는 포스텍 학생들이 고학력 인재로서 포항에서 계속 일하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수도권의 잘 정비된 일자리를 버리고 포항을 개척하고자 할까.

포항과 미래

과연 포항은 어떻게 될까. 갑자기 확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몰락하게 될까 아니면 반등할 수 있을까? 2024년 포항의 인구는 50만명 아래로 감소했다. 이 책이 출판된 시점, 포항의 인구 감소세를 보면 이미 예정된 일이었을 것이다.

저자가 포항시 미래 사업으로서 기대한 포스텍 의과대학의 설립도 총장이 바뀌면서 추진력이 멈췄다. 저자는 포스텍이 관련된 사업에 포스텍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포항시만 나선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그나마 의과 대학과 연구 중심 의전원 신설에 대해서는 포스텍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2024년 초 총장이 바뀌면서 포스텍은 더 이상 의과 대학 신설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다.

책에서도 인용한 포스텍 김호길 총장님의 말이 있다. "유학을 왔습니까, 이민을 왔습니까? 이민을 온 사람들은 남으시고, 유학을 온 사람들은 공부가 끝났으면 조국으로 돌아갑시다. 한국에서의 일류대학은 포항공대가 마지막입니다." 

안타깝지만, 나는 아직까지 포항에 유학을 왔다. 포항시민도 아니다. 그저 포항에 살 뿐이다. 공부가 끝나면 나는 다시 수원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내가 살고 있는 포항이라는 지역에 애착은 아직 없다. 과연 대학에 다니는 4년간 포항은 나의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 다시 성장할 수 있을까. 그건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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